Thursday, January 2, 2014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게 하는 사랑: 2014. 1. 2

18.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연애이고, 사랑이란 그 반대로 자신의 모습이 또렷이 보이는 상태.

아마도 연애를 하면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마는 그런 느낌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19. 즉, 연애란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멀어버리는 현상입니다. 잘 안다는 것이 전혀 모른다는 것과 비슷하듯...

28. 지난번에 어떤 여성지의 인터뷰에서 연애는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나는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남자를 원합니다. 그 남자, 그 사람을 좋아하죠. 그래서 그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관찰자로서 연애를 좋아하는 것이고, 실천적으로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41. 공허함에 빠진 사람은 그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나는 미래에 희망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두렵고 불안한 나날들이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어떤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자고.

42. 미래를 믿지 않고 늘 영원한 현재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에 대한 경험이나 동경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벼락이 치는 듯한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연애로 살아가는 길에 더 이끌렸던 것입니다.

44. 성격이 다르다고 결혼 못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란 제각기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까. 성격이 다른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혼의 진짜 이유는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이나 연정이 현실 생활에 밀려 없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46. 연애를 하려면 겨울 하늘에서 작열하는 불꽃처럼 격렬하면서도 찰나적인 것이 가장 좋고, 사랑은 무상의 사랑이 가장 좋습니다. 연애에는 어딘지 모르게 이해타산의 감정이 깔려 있기에 더욱이 한번 불이 붙었다 하면 높고 찬란하게 활활 타오를 수 있지만, 무상의 사랑에는 이해타산 같은 불순물이 없는 만큼 어떤 고난과 고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해타산으로 사랑을 가늠한다면 참 고단한 일이겠지요.

47. 연애는 입구로 들어가거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규칙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애를 시작하면서 모든 사람이 공통 개념에 사로잡혀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그 개념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닐까요. 그런 공통 개념 같은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질서도 규칙도 자기와 상대 사이에만 있는 거잖아요.

50. '외톨이'라고 혹은 '나 스스로 해야지.' 하고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실제로는 모두들 혼자예요. 그래서 어쩔 줄 모르죠, 그 어쩔 줄 모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자기 의지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정보를 근거로 행동할 것인가, 스스로 결정하여 행동할 것인가입니다. 그 길에 레일은 없어요.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게 되지만 '저 쪽이 앞' 이라는 믿음이 어디서 온 거지? 란 물음을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아요, 난.

52. 어른이 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른이 된다'고 말할 때 그건 황무지에 서는 것을 의미해요. 황무지에 서 있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할 거리가 없지요. 그럼 불행도 없고요. 그래서 어른이 된 나는 이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는 거예요.

53. 그 무렵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나는 다니고 싶은 회사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정말 어째야 좋을지 몰랐죠. 다들 어떻게 회사를 정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회사에 들어가 뭘 할지도 모르면서 왜 다들 회사에 들어가는지 의문이었죠.

68. '아니에요, 당신은 자유예요.' 라고 말하는 것을 고상하다 여기지 않아요. 당연하잖아요. '나는 이렇게 당신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내 곁에 없어도 괜찮다. 어디에 있든 당신을 사랑한다.'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지요. 물론 부담이 되고 싶지도 않고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있어 주는 것이 고맙죠.
하지만 싫어요, 다른 사람을 보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싫어요. '우리는 이미 만났으니까, 다른 사람은 보지 말아요.' 라고 말하고 싶어요. 안 그래요? 그렇게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연애의 미덕이잖아요.

69. 사랑함에 준다는 것과 빼앗는다는 것은 동의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사랑이란 폭력적이죠. 무언가를 바라는 편이 겸허하고 친절한 것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요. 바랄 수 있으면 상대는 그에 대답하든지 안핟느지 선택할 수 있지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에 빠졌다면 상대방은 어떻게도 할 수 없어요. 그야말로 극단적인 폭력이죠. 보상이 없는 무상의 사랑 따위, 나는 전혀 고상하게 여기지 않아요.

75. 안녕, 언젠가
인간은 늘 안녕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야
고독이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사랑 앞에서 몸을 떨기 전에, 우산을 사야 해
아무리 뜨거운 사랑 앞이라도 행복을 믿어서는 안 돼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로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사랑이란 계절과도 같은 것
그냥 찾아와서 인생을 지겹지 않게 치장할 뿐인 것
사랑이라고 부르는 순간, 스르르 녹아버리는 얼음 조각

안녕, 언젠가

영원한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불행도 없는 거야
언젠가 안녕이 찾아오고, 또 언젠가 만남이 찾아오느니
인간은 죽을 때, 사랑받은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거야

난 사랑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85. '사랑이 점점 정으로 바뀌는 법이지.' 또는 '새삼스럽게 무슨 사랑.' '남세스럽다.' 면서 사랑없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경우 물론 평화로운 정의 나날일 수는 있겠지만 사랑을 잃은 대신 얻은 정이라 생각하면 너무 서글프잖아요.
내가 싫은 것은 그것을 '종착점'으로 삼는 풍조. 앞에서 황무지에 대해 얘기했는데 질서가 있고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연애에서 시작해 사랑을 키우고, 정으로 바뀌고... 그러다 보면 '사랑 없는 정'을 종착점으로 여기게 되잖아요. 사랑이 없다 또는 사랑이 식었다고 해서 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것이 종착점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요? 조그만 소리로 투덜거리는 거예요, 난. 사랑이 성숙한다느니, 안정을 얻어간다느니, 그런 것 자체가 아무 근거도 없는데 말이에요.

103. 세상은 넓고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운명적인 만남이란 것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카나리아가 발견한 한 장의 광고지 속에 모든 것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카나리아를 찾습니다."

106. 어떤 사람이든, 어떤 연애든, 어떤 상황이든, 온 세계와 온 우주에 비교한다면 새장입니다. 하지만, 나올 필요가 없어요, 거기에 모든 것이 있으니까. 그것이 바로 연애의 본질. 그 장소에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연애이고,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전 인생을 바쳐 쌓아온 세계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연애입니다.

109. 문제는 지배당하는 데 만족하는 사람이죠. 즉 지배당하는 것 자체를 기분 좋게 생각하고, 조용히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좀... 나만의 존재가 되어 주기를 원하기에 속박하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속박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싫습니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속박당하고 있을 때도, 늘 속박에서 벗어나 은밀히 자유롭고 싶어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이 '은밀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골적으로 '나는 자유롭고 싶어.'하고 말하면 멋이 없지 않습니까. 어느 날 문득 어디론가 가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면서도 일부로 속박을 즐거워하는 척 가장하는 '교활한' 여자가 좋습니다.

110. 이런 구제할 길 없는 남자를 멋지게 조종할 수 있는 여자에게 나는 동경과 매력을 느낍니다. 잘난 척하는 남자를 잘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가 가진 이기주의의 힘을 이용하여 가능한 한 유리한 게임을 진행시킬 정도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아껴가면서 드러내야 합니다. 다만, 절실한 순간에 그것을 드러내는 거지요. 그런 여자 앞이만 난 이미 끝장이라고 해야겠지요.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4. 누군가의 여자란 자각은 속박당하고 있다는 자각일 수도 있지요. 그의 소유물이란 믿음. 그 사람의 일부, 그 사람 것이고 싶으니까. 이런 긍정적인 속박도 있어요. 사전적인 뜻에는 갇힌다, 묶인다는 부정적인 면밖에 없지만 긍정적으로 풀이하면 그 사람의 품안에 있다, 그사람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다는 뜻이니까, 바라 마지않는 일이죠.

122. 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입니다. 자신의 청춘을 그런 꽃과 똑같이 생각하고, 이미 꽃은 저버렸으니 이제 늙어갈 따름이라고 체념해 버립니다. 이 체념이 위험한 것입니다.
인간은 꽃이 아닙니다. 젊음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이 아니면 아름다울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왜 꽃이 아닌 돌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을까요. 갈면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흑요석이나 수정, 다이아몬드에 자신의 모습을 비유해 보지 않을까요.

123. 그 할머니는 명랑하고 낙천적이며 싹싹한 성격을 가졌고 아직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순간까지 인생을 버리지 않으면 저절로 아름다워지고 사랑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을 배우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랑을 해왔는가.'라는 과정이야 말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125. 나는 몇 살까지는 살고 싶지만 당장 죽어도 상관은 없어요. 당장 죽어도 좋고, 오래오래 살아도 좋고.

128. '보이고 싶은 자기'란 연기거나 연출이어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게 보이는 모습은 즉 그가 내게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하니까. 뭐 그런 모습을 내가 좋아하니까 사랑에 빠지는 것이죠.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표출한 것을 좋다고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나는 그것들을 믿어요. 설령 그것이 가장된 모습이었다 해도 그가 나를 위해 만들어 낸 모습이니까 상관없어요. 내게 진실은 어디까지나 하나니까.

143. 에너지는 소비하지 않으면 축적되지 않는다. ...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마냥 쉬고만 있어 봐야 회복되지 않는다.
성가시고 귀찮아도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나가지 않으면 에너지는 얻을 수 없어요. 연애를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죠, 그런데 연애는 하면 할수록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해요.

194. '나는, 인간이 가장 사랑을 느끼는 때는 사랑 그 자체를 느끼는 때보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사랑을 끄집어 내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이 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연애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 그런 면이 있지요. 끝나고 나서야 분명해지는 것이. 난 소설을 쓸 때 그런 생각을 해요. 쓰고 나서야 비로소 정착하는 것이 있지요.
'사랑의 곤란함은 정말 사랑받고 있을 때 또는 정말 사랑하고 있을 때 분노나 욕망에 눈이 멀어 사랑의 깊은 부분을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 결혼한 상대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불륜이라고 ㅎ나다면, 그것은 약속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다른 곳으로 이행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굳은 약속을 했다 한들 상대에게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왜 약속을 어기느냐고 구속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내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자책할 것입니다.

202. 결혼을 하고도 적당히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사랑하지 않는데 여기저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아내나 남편이나 달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부부로서 연기를 하는 그런 세계. 그렇게 적당히 사랑하는 편이 풍파도 일지 않을 테니 편안하긴 할 겁니다.

216. 다만, 내가 여기서 사랑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랑은 홀로 설 때 비로소 공존도 지속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홀로서기가 중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제각기 홀로 설 때, 비로소 그 사랑은 완성되기 때문이지요.

225. 어느 사랑을 선택하든 자신에게 거짓이 없다면,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36. 나는 배신당하는 것도 인생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배신한 인간은 신이 내 인생을 위해 보내 준 교육자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45. 인간은 고독 속에 살고, 고독 속에 죽는 존재가 아닐까요.
친구는 그 입구에 있고, 연인은 다음 단계에 있고, 결혼은 마지막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최후의 황무지에 꽃이 피어 마침내 꽃의 들판이 된다면 그 사람의 일생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든 황무지에 꽃을 피우고 싶을 겁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250. 내가 바라는 것은 내내 사이좋게 같이 있는 것, 아주 단순하죠. 그게 가장 좋아요. 자기들에게 가장 옳은 방법- 쾌적하고 자유롭고-을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요.

256. 평생 손목시계를 차지 않고 살아온 나이기에, 시간이나 제도나 세간의 상식 따위에 구속된 채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265. 이상적인 죽음이란, 죽음과 화해하는 것이며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70. 난 이 세상에 영원이 있다고, 절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순간적이긴 하겠지만 그 한 순간 속에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271.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죽고 싶어요.

276. 연애는 개념의 파괴니까, 인생을 건설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죠. 그 점이 재미있지 않나요. 연애에 빠지면 옷깃을 여미고 끝까지 빠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랑을 지나 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