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19, 2015

요시모토 바나나- 암리타: 2015. 2. 13

13. 같은 집에 오래도록 함께 있지 않으면, 설령 같은 핏줄이라도 그리운 풍경의 하나로 멀어져 간다.

53. 인간이, 지금 여기에 있는 확고부동한 덩어리가, 실은 물렁물렁 부드럽고, 무엇엔가 살짝 찔리거나 부딪히기만 해도 쉽사리 부서지고 마는 엉터리라는 걸 실감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렇듯 날달걀 같은 물체가 오늘도 무사히 제 기능을 완수하고 생활을 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오늘도 자신을 간단하게 부숴버릴 수 있는 무수한 도구를 다루면서도 무사히 하루를 넘기고 있다는 이 기적이여..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더니 도무지 생각이 멈추지를 않았다.
나는 물론 지금도 아는 사람이 죽을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탄식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반면, 그래도 지금까지 거기에 존재했다는 기적에 비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살아 있으면서도 거의 정지해 버린 기분이 들곤 한다.
우주며 친구며, 친구의 부모, 또 그 사람의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들. 무한한 수에, 무한한 삶과 죽음. 소름이 오싹 끼치는 수치. 여기서 보고 있기로 하자, 한없이 영원에 가까운 그 수치를.

63. 더구나 나만의 나라는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르는 거니까요.

73. 왠지, 비 오는 날이면 어린 시절 같은 느낌 들지 않아?

75. 그 당시에는 죽고 싶을 정도로 따분한데, 나중에 되새겨보면 미치도록 사랑스런 것이다.
그리고 금방 떠올랐다. 여기에 있는 친구들과 같은 교실에 있었던 시절, 수업중에 졸았던 기억이다.
축사를 하고 있는 아저씨의 결코 흥미롭지 못한 내용의 얘기와 낮은 음성과, 그것이 높은 천장에 부딪혀 반향하는 울림이, 어느 오후의 수업을 떠오르게 한 것이다.
햇살이 스미는 밝은 교실에서 한참을 신나게 졸다가, 갑자기 눈을 뜰 때면 순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알지 못한다. 아까 가물가물하게 멀어져 갔던 선생님의 음성이 똑같은 음량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 무음을 즐기고 있음을, 새삼스레 표시하고 있는 집단 같았다. 마른 나무 냄새,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 창밖으로는 푸르른 나무숲. 여기에 있는 사람들, 같은 나이의 사이좋은 사람들. 쉬는 시간이 되면 일제히 요동하기 시작하는 공기. 필통에 반사된 빛이 천장에서 춤추고, 이제 10분 후면 울릴 종소리를 모두들 고대하고 있다. 이처럼 기적 같은 공유를, 이곳을 떠나게 되면 두 번 다시 가은 친구들과 나눌 수 없다. 이 공간에는 그런 모든 정보가, 아스라한 향기처럼 포함되어 있다. 그런 느낌, 가슴을 저미는 빛의 기억.

77. 죽은 자는, 산 자의 마음에 부드러운 그림자만 드리운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본인이 아니니까, 옛날 일이라고는 하지만 훨씬 더 멀어진다. 이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고 멀다. 손을 흔들고 있다. 웃고 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88. 예쁜 테이블과 가느다란 은수저에, 레몬 향기가 아련하게 감도는 투명한 물.
에스프레소와 달콤한 케이크.

기억이 격렬하게 되살아났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나는 옜날 일을 별로 기억하고 있지 않으니 어젯일이 어제의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데, 먼먼 옛날 일이 이렇게 갑자기 눈앞으로 성큼 다가설 때가 있다. 그때의 공기며, 기분이며, 장면.
지금 막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여겨질 만큼 고동스럽게.
그 지나친 생생함에 정말이지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