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5, 2014

에쿠니 가오리: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2014. 8.15

116. 발바닥이 보송보송하고 따스할 것! 행복의 첫째 조건이다.

139. 내게 목욕은, 현실을 떠나 다른 공간으로 가는 짧지만 결정적인 타임 슬립이다. 그러니까 타월이나 로브는 현실로 돌아온 첫 순간 내 몸에 닿는, 이른바 내가 있어야 할 현실 세계의 대표인 셈이다. 그러니 폭신폭신하고 보송보송하고 따뜻하기를 바란다.

144. 가슴에 세계의 끝을 품은 자는 세계의 끝으로 가야 한다.

외로움은 언제나 신선하다.

그래서 또 다른 곳에서는 '좋아하는 것'에 착안해서 '잠자기', '놀기', '핫초콜릿', '보송보송 따스한 남자의 손'이라고 써본다.

171. 이제 곧 여름이 온다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반가움일까. 실제로도 여름의 해거름에는 각벼한 분위기가 있다. 그리움이라 해도 ㅈ호고 애매함을 허용하는 공기라 해도 좋을 무언가가.
계절의 변화에는 정말 과묵하고 압도적인 평온함이 있다. 사람들이 날마다 어떤 문젯거리로 골머리를 썩고 얼마나 우왕좌왕하며 살아가든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때가 되면 계절은 어김없이 바뀐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랬던 것처럼. 문득 그 사실을 깨달아, 기쁘고 평온해지는지도 모르겠다.

182. 폭소는 원한다고 쉬이 얻어지는 게 아니다. 폭소는 돌아오지 않는다.
키득, 한 번 웃고 말 사건이나 농담은 나중에 다시 생각하면서도 키득거릴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그 사람 역시 키득 웃을 수 있다. 하지만 폭소는 그렇지 않다.
폭소는 일종의 광기, 조그만 광기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다. 건드림을 당한 쪽의 무언가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와 연결된 것이고, 그 근간이 깊은 혼돈 속에 있기에, 웃음이 끝없이 터져 나온다. 끝없이 재미가 이어진다.
10대를 가리켜 바람에 구르는 낙엽만 보아도 재미나는 시절이라고 한다면, 그 나이 때가 별 자가 없이 광기를 드러내기 쉬운 시기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폭소를 터뜨렸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 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웃었을까 의아한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는, 웃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모른다는 것을 알기도 하고, 또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웃고 있는 동안, 그 웃음이 다른 감정을 환기한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 그렇게 웃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상- 기쁨, 행복감 혹은 반대로 기묘함, 걱정, 자포자기하는 마음, 이런저런-과 이어지면서 웃음이 박차를 가한다.

189. 절대 돈의 문제는 아니다. 케이크를 스무 조각씩 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움찔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손님이 꽤나 많이 오는 모양이지, 하고 상상할 거싱다.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 움찔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건 참 마음 편한 일이다. 자유를 그렇게 정의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 만큼.
운전을 하든 말든, 케이크를 몇 개 사든, 다 내 마음이란 사실이 때로 놀랍고, 실제로도 놀란다. 아직도 그 사실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190. 복잡한 전철을 탔을 때면 간혹 생각한다. 모두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어른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과거 어느 때에는 모두 어린애였다. 거짓말을 하고 투정을 부리고 울고 떼를 쓰고 목욕을 싫어하고 잠자다 오줌을 싸고 이를 닦지 않는 어린애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 신기하면서도 끔찍하다. 말이 통하는 어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애가 성장했을 뿐이다. 그러니 믿을 수 없다.
어린이에게는 세계가 온통 불합리하다. 내게는 그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절절하게 남아 있다.

192. 우리네 눈에는 그저 자잘하고 사소하기만 한 것들이라서 늘 무심히 스치고 지나갈 뿐, 새 생명을 부여하지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지도 못하지요.

그래서 그녀의 에세이를 읽는 즈거움은 작은 것들에 쏟아지는 애틋함과 작은 것들마저 놓치지 않는 늘 깨어 있는 의식과 새로운 의미를 탄생케 하는 애정 어린 숨결을 느끼는 즐거움이며 그녀의 일상을 엿보는 동시에, 그런 것들이 그녀의 작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알게되는, 그런 즐거움입니다.

Sunday, August 3, 2014

야마다 에이미-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 2014. 8. 3

20. '너'라고 불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상대에게 살짝 얕보이는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남자가 자신을 얕보는 걸 흐뭇하게 느낄 때,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22. 지금까지 사카에만의 공간이었던 이 집 구석구석에 내 냄새가 스며든다. 사카에가 건네준 보조 열쇠를 처음 사용하던 날의 흥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열쇠 구멍에, 나를 불어넣었다. 그 소리, 찰칵. 무언가를 덥석 깨문 기분이었다. 남자가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 것은, 생활의 터전 모두. 그는 무척이나 친절하다. 몸은 물론 갖가지를 내게 던져 준다. 내던지는 그 멋진 폼. 자신의 세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도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이 든다. 집착 따위를 매력의 하나로 생각하는 저자의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더니, 나 애당초 별다른 세계 갖고 있지 않았어, 하며 그가 웃는다. 별거 없는 세계. 그것이 얼마나 삶을 편안케 해 주는지.

35. 남들이 생각하는 듬직함과 ㅐㄴ가 원하는 듬직함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나는 체격이 크고 경제력이 있다고 안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편리함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내가 하려는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사람을 만났을 때, 듬직하다 싶어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허풍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그런 순간,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말이 많아진다. 손님을 대하는 장사를 하는 주제에 무뚝뚝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나이지만, 전하고 싶은 말이 쏙쏙 전해지는 사람 앞에서는 엄청난 수다쟁이가 된다. 하지만 그런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귀다 헤어진 몇몇 남자와 많지 않은 친구들 말고는. 나는 어쩌면 남들 눈에는 외롭게 나이만 먹은 여자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정녕 외로움을 느끼는 때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방글거리며 관계해아 하는 경우이다. 통하는 말이 얼마 안 되는 사람과 가까스로 소통해야 하는 장면에 부딪치면, 왠지 모르게 비참해진다.

48. 그는 나날의 식량을 귀여워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일상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을 달리 모른다.

다다미 위에 누워 옆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잠이 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가 내리고 있다. 빗방울이 빗물 통을 규칙적으로 두드린다. 왠지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옜날 집의 효과다.

67. 경험은 사람에게 배움을 선사하지만, 사람을 강하게 하지는 않는다. 강한 척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할 뿐, 오히려 나는 점점, 겁쟁이가 되어 가고 있다. 겁날 것 없던 때가 그립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겁쟁이임을 스스로 알기에 잃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경험이 일궈 낸 풍요로운 겁쟁이.

80. 소극적인 룰이 남녀 사이에 적용되는 순간, 열은 이내 정상으로 돌아간다. 예의 바른 연애가 따분하다는 것은 고릿적에 알아 버렸다. 착함이란 아이들만의 특권이다. 그리고 버릇없음이란 어른에게만 허가되는 특허다.

100. 아까워 내밀지 못한 마음은 쓸모가 없어지고 끝내는 유통 기간마저 지나고 만다. 그런 것들만 마음에 꼭꼭 보존하다 보면 새로운 마음이 들어찰 장소가 없어진다. 그태껏 나는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늘 아까워한 탓에 결국은 썩어 버리게 했다.

하지만 사카에에게는 마음껏 애정을 쏟는다. 따뜻한 물을 펑펑 쓰듯 함부로 쓴다. 그래도 나는 언제든 촉촉하게 젖어 있다. 왜냐하면 그 역시 편리한 남자로 내게 애정을 하염없이 쏟으니까. 영원히 타인 우선을 신조로 하는 너그러운 인간은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알았어. 나를 위해 그래 줄 수 있는 인간을 위해서라면, 쉽사리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는 것을.

107. 사카에는 다른 남자들이 젊은 여자의 몸을 칭찬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치켜세우지 안흔ㄷ나. 내가 나인 증거를 찾아, 그 점을 칭찬해 준다. 그가 말하기를, 지우의 몸에는 결점이 없다나. 정말 고마운 말이다. 툭 튀어나온 배는 큐피처럼 유머러스하단다. 여기가 갓난아기처럼 귀여워, 란다. 푸훗, 눈물이 날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