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14, 2014

위지안 -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2014. 4. 13

13. 시곗바늘은 늘 하던 일을 하는 것뿐이겠지만, 초침이 딱 한 칸 움직이는 그사이에 '끝'이 '처음'으로 변하는 건 1년에 단 한 번뿐이지 않은가. 그래, 영원한 '끝'은 없다. 끝이라 여기는 순간, 뒷면에 있던 시작이 다시 앞으로 온다. 앞뒤가 번갈아 도는 것처럼 시작과 끝도 영원히 번갈아 돈다. 참 고마운 회전이다.

16. 우리는 뭔가를 잡기 위해서는 아주 먼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믿으며, 십중팔구 그런 믿음이란 것이 '턱도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혹은 모든 게 끝난 뒤에야 그보다 훨씬 값진 일을 지나쳐버렸음을 후회하곤 한다.

33. 사람은 갑작스럽게 큰 고통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는 것을.

42.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라는 것을.

44. 블로그에 올린 생일 단상에서 나는 '서른 살이 여자에게 가장 좋은 시절이 아닐까 싶다'고 써놓았다. 그런대로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세상사와 사람들에 대한 통찰력도 생겨 가장 조화롭고 풍성한 시기라는 뜻에서였다. 튤립꽃처럼 풍성한 여자 나이 서른.

45. 정상을 향해 돌진하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면서 주변의 꽃과 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의 향기와 산들바람에 취해 잠시 멈춰 서는 일도 일어났다. 경쟁자로 여기던 사람들이 앞서 갔는지, 아니면 뒤에서 추격해오고 있는지 따위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피곤하면 어디든 앉아 쉬고 가는 게 인생이라는 지혜를 조금은 깨달은 것도 같은 나이 서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보낼 줄도 아는 나이.
스무 살 때는 스스로를 아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직 나만 사랑했다. 그러나 서른 즈음에는, 자신을 아낀다는 것이 값비싼 화장품 하나 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스스로를 아끼는 방법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베풀기 시작하면 자기 마음에서 흘러 넘치는 큰 사랑이 끊임없이 이어져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니까.

47. 불리불기: 헤어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49. 이제야 '나는 잘 모르겠어'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큰 자유를 가져다 주는지 알 것 같다. 병원에 누워 또 한걸음 나아간 나의 각성. '맞아. 좀 더 여유롭고 평화로워지기 위해서는 삶의 곳곳에 빈틈이 있어야 하는 거야.'

운명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없지만 운명에 대한 나의 자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58. 나는 내 꿈을 이루고 나면 사랑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거라 여겼었다. 그러나 새싹이 자라 나무가 되기까지는 엄마 품 같은 햇빛이 늘 필요한 거였다. 내가 틀렸다.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65. 맞아, 유쾌하게. 마지막 그날까지 내 삶을 즐기는 거야. 남들이 뭐라고 하든.

66. 특히 엄마는 내가 줄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당신 딸 위지안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73. 정성이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매일 지속되는 사소함에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74. 나는 남편 맥도널드를 사랑했지만 왜 사랑했는지, 또 어떤 형태의 사랑인지는 굳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갓 사랑을 시작했을 때에도 대단히 열렬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단조롭지도 않았다.
둘이 만나 인생을 같이 걸어가려면 사랑이 너무 적어도, 넘쳐도 좋지 않은 거야. 사랑이 적으면 '함께'라는 의미가 무색해지고, 사랑이 넘치면 자아를 잃을 숟 있기 때문이지.

사랑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눈에 보이지 않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 그건 위험한 거야. 심하ㅔㄱ 의존하고 있는 거니까. 바람직한 사랑 혹은 결혼이란, 모든 중심을 상대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중심을 잃지 않게 서로 균형을 잡아주는 거야.

78. 불같은 사랑도 좋지. 그렇지만 잔잔한 사랑도 괜찮을 것 같아. 서로 균형을 잡으면서 오래갈 수 있으니까.

86.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인생이라는 차가운 벌판 위에서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존재, 그런 사람인가 하는 점.

91. 인생이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기엔 너무 소중하고, 출세만을 위해 살기에는 너무 값지다. 혼자 깨어 있는 적막한 시간에 마음 깊은 곳에서 영혼의 갈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뜻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 좋은 인생일 것이다.

92. 개인의 가치와 공동의 사회적 가치가 합쳐진 삶이야말로 진정 '멋진 인생'이며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개인적 목적)와 이 지구라는 행성에 어떤 도움을 주기 위해 왔는지 (사회적 목적)가 온전하게 결합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각성이 아닐까 싶다.

자기 삶의 궤적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리라.

96. 노르웨이 유학 중에는 끔찍할 정도로 그가 보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궁금했고,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한밤중에 그의 전화를 받을 때면 눈물부터 흐르기 시작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자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냥 익숙하고 편한 상태로 함께 살아가는 정도랄까. 약간은 심심하고 또 약간은 지루한 듯 상대방이 하는 일을 존중해가며 평범하게 살아갔다.

99.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것은 상대가 아닌, 자기 스스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든다. 정말 사랑이라면 그걸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즐겁게 마음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니까.

101.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눈앞에서 조용히 지나가지만 우리는 그 어떤 수단을 써도 그것을 잡을 수 없다.

105.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한 시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나는 침대에 누워 창밖의 먼 길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길이 끝나는 곳까지 쉬엄쉬엄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갈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시간이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라고.

111. 우리가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한 몸이 있기 때문이다. 땀 흘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성취감까지 만끽할 수 있게 해준 나의 몸에 지금 뒤늦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 고된 추억이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추억이란 게 왜 그렇게 소중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게 되면 누구나 아껴둔 식량처럼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 하나씩 하나씩 음미하게 된다. 그런 음미를 통해 추억의 의미를 재해석 하고 삶의 또 다른 지혜를 얻는 것이다.
나중에 더 많은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삶의 매 순간을 가득가득 채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든.

125. 불안과 두려움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이나 두려움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말 어른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감정을 창피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두려움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132. '최고'는 마음에서 다르다. 언제나 혼을 불어넣는 건, 상대를 위해주는 마음이니까. 결정적인 차이는 그 지점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140. 불안과 두려움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머리를 똑바로 쳐들고 당당히 맞서면 생각했던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

145.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있다. 내 인생에는 그저 '살아 있음'이라는 목표만 남았다. 이렇게 명확하고 단순한 목표가 또 어디 있을까? 예전에 나를 움직였던 동력들은 모두 성공과 집착에 따른 것들이었다. 병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그런 가치들을 좇아 부산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 암으로 인해 그런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삶이 즐거워졌다. 나는 내 몫의 하루하루를 그저 열심히 살면 그만이다. 돈? 명예? 권련? 그런 것들은 다 갖기도 어렵고, 설령 모두 가졌다 해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동안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았다. 저당 잡혔던 그 무수한 '오늘'들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이제 나는 오늘 하루에 모든 것을 바친다.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남보다 더 즐거워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살아갈 날들이 많지 않을 테니까.

153. 인생이란 늘 이를 악물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보다는, 좀 늦더라도 착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걷는 사람에게 지름길을 열어주는지도 모른다.

157. 한 명의 은인이 나의 운명을 바꿔주는 것처럼, 한 권의 책도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은인을 만나는 것이 상당 부분 하늘의 도움인 데 비해, 책은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아닐까.

162. 하늘은 매일같이 이 아름다운 것들을 내게 주었지만 정작 나는 그 축복을 못 받고 있었다. 선물을 받으려면 두 손을 펼쳐야 하는데 내 손은 늘 뭔가를 꽉 쥐고 있었으니.

175. 어쩌면 병이란, 우리가 평생 살아도 깨닫지 못할 그런 사랑을 일깨워주기 위한 가장 극단적인 처방일지도 모른다.

187. 눈앞의 어려움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대처 방법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한사코 포기하거나 회피하려고 한다면 시련은 더욱 커질 것이다. 반면 그것을 온전히 치러야 할 삶의 대가로 받아들인다면, 시련이 아니라 일종의 시험이 된다.

190.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삶의 시간이 멈추는 것보다 내가 받은 사랑을 다 갚지 못할까봐, 그게 더 두렵다. 세상에 빚을 지고 싶지 않다. 사랑만 남겨두고 싶다.

195. 생각해보면, 기적은 꽤나 가까이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대단한 것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기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기적이 그 다음의 기적을 불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202. 세상에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기억을 떠올려보라. 그 많은 손길들이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그 많은 눈들이 슬픔 아닌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허전했던 가슴을 채워줄 것이다.

207. 상상도 못할 아픔과 바닥이 없는 공포, 여기에 목숨을 거는 모성(임신에서 출산까지의 모든 과정이 위험천만이다)으로 인해 당신은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의 드라마가 아닐까.
그런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며 태어났으니, 우리는 모두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222. 먼 훗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면, '최선을 다해 남겨진 시간을 즐겁고 활기차게 살았다'고 고개를 끄덕여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234. 운명이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다 해도, 결코 빼앗지 못할 단 한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선택의 권리'일 것이다.

278.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인 것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