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9, 2014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2014. 11. 8

8. 어차피 지금 쓴 글들도 시간이 가면 지금처럼 낯간지러울 게 뻔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게 있다. 험한 말로는 뻔뻔스러움이요, 조금 포장을 하면 어떤 성과도 과오도 시간이 가면 다 별거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14.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42.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잊혀지고, 절대 용서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성장한다. 누구는 그러한 성장을 성숙이라고도 하고 타락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만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49. 서로가 서로에게 강자이거나 약자라고 생각할 때,
사랑의 설레임은 물론 사랑마저 끝이 난다.
이 세상에 권력의 구조가 끼어들지 않는 순수한 관계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레임이 설레임으로만 오래도록 남아 있는
그런 관계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아직은 모를 일이다.

56.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