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19, 2014

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2014. 9. 19

76. 내게 인생이란 운동장 같은 것이다. 입구도 출구도 없고, 물론 어딘가에는 있을 테지만, 있어도 별 의미가 없다. 무질서하고, 전진도 후퇴도 없다. 모두들 그곳에서, 그저 운동을 할 뿐이다. 나는 그곳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86. 왜일까, 나는 어른인데, 때로 어린애의 시간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114. 나는 애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애인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까,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비슷한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애인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언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언어로 사고하려 하면,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만다.

120. 나는 지금 아파트 베란다에 있고, 활짝 연 창문으로 방안 공기를 환기시키려 한다. 방안에는 커피잔이 두 개, 그대로 놓여 있다. 밖은 춥고, 구름이 끼여 있고, 팽팽한 기운이 느껴진다. 베란다는 여전히 복작복작하고, 화분이니 빈 병이니, 망가진 캔버스가 쌓여 있다.

123. 애인이 돌아간 후의 방은 휑하고, 나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침대에 동그마니 누워, 나는 어둠을 쏘아보고 있다. 절실하게, 줄리앙처럼 의연한 태도로 애정을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백퍼센트의 신뢰와, 백퍼센트의 고독을, 피하지 않고 마음에 또렷이 새기고 싶다고.

나의 인생은 때로는 어린애의 그것처럼, 때로는 노인의 그것처럼 보인다. 절대 서른여덟 살 여자의 그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갇혀 있다고 느낀다. 애인의 마음속에, 또는 어린애인 내 머리 속에.

132. 애인을 만나기 전에도, 누군가를 좋아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대체 어떤 남자들이었을까. 모든것이 너무 멀어서 마치 타인의 기억 같다. 내 자신의 과거가 타인의 추억담을 듣는 정도로만 느껴진다.
이 역시 내가 갇혀 있는 탓이다. 나는 갑자기 두려워진다. 그래서 다음에 애인을 만나면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어딘가에 가둘 거면, 그곳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게 해줘야 한다고. 자유 따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134. 햇살.
나는 겨울 햇살의 양감을 좋아한다. 그것은 실로 풍성하게 나의 창가를 찾아준다. 아주 잠깐. 똑같다. 햇살도 동생이나 애인과 마찬가지로, 내 집을 찾아왔다가는 돌아간다.

141. 조명을 낮춘 침실은 어둡고, 샤워 코롱 냄새가 난다.
나는 애인 덕분에 이 세상에 겨우 발을 붙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기묘한 감각이다. 애인이 전부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애인과 함께 있는 내가 전부라고 느낀다. 나는 그것을, 외롭다고 해야 하는지 충족돼 있다고 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럽다. 옳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옳지 않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 그만 생각을 포기한다.

144. 아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언가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156. 봄. 어느 날, 일터의 창문을 연 나는 봄이 왔다는 것을 안다. 늘 그렇다. 봄은 홀연히 나타난다. 공기가 달콤하고 부드럽게 풀어진다. 그것은 어제까지의 공기와 전혀 다르다.

164.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야. 인생은 황야니까.

181. 나는 아틀리에에서 책을 읽고 있다. 봄햇살이 비치는 아틀리에에서. 애인은 어제, 일 때문에 여행을 떠났다.
여드레 간, 애인은 나의 세계 어디에도 없다. 애인의 부제에 이 거리의 모습이 바뀌고, 내 모습이 바뀐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어제까지의 나는 애인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여기에 있는 것은, 애인을 만나기 전의 나다.
나는 해방된 기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조그만 죽음 같은 것이다.

190. '보고 싶었어.'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다. 보고 싶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방금 전이다. 그때까지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인 따위 만난 적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는, 자신이 몹시 망가져 있다는 것을 안다.

206.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살 수 있어.

210. 여름은 입을 쩍 벌리고, 정체 모를 불안과 나른함으로, 그저 거기에 있었다. 한없이.
앞날이란 말 바깥쪽에서 나는 살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것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뭍이 없는 바다에서 혼자, 방향도 모른 채, 이유도 목적도 없이, 헤엄칠 줄 모르는데 헤엄쳐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더욱 비장한 것은 나는 뭍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인생에 절망한 것은 아니다. 그때부터 줄곧, 인생과 절망은 같았다.

213. 에어컨이 켜져 있어 실내 온도는 낮은데,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흘러든다. 햇살은 이미 기울었지만, 한낮의 열기가 아직도 여운을 남기고 있다.

246.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애인을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미 그런 세상의 가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홍찻잔에 곁들여진 각설탕이 홍차 없이는 의미를 갖지 못하듯, 애인 없는 자신의 삶은 무의미하기에 절망한 여자.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만 애인이 없는 상태의 자신은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니기에, 결국은 애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게 되는 여자. 이런 여자에게 사랑은 곧 절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어린애가 부모의 보호와 가정이란 울타리에 갇혀서야 존재를 지탱할 수 있듯이, 그녀는 애인의 사랑이란 울타리에 갇혀서야 존재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한없이 어른이기를 소망하지만, 애인의 품에 안기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기에 그녀란 존재는 외적으로는 어른이어도 한없이 어린애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녀가 어른이기를 주장하고, 절망을 벗어던지려 할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애인과의 헤어짐이고, 이 헤어짐은 곧 그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Saturday, September 13, 2014

에쿠니 가오리-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2014. 9. 13

125. 때로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똑같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147. 일단 한 번 죽은 후에 다시 사니까, 야, 그거 편하던데.

일단 죽은 후에 다시 산다. 그 말이 나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일단 파괴한다는 것. 나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아버렸다. 파괴하면 돌아갈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을.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여름휴가 때나 설날 때나 홀로 아파트에서 지내고, 아르바이트하는 여고생에게 친구 대접이나 받는 오니시 씨처럼.

161. 오이의 초록은 어쩜 이리도 예쁠까. 표면의 짙은 초록과 가로로 동그랗게 잘랐을 때의 싱그럽고 엷은 초록.
밖은 비. 나는 부엌에서 혼자 오이를 바라보고 있다. 오이는 거의 늘 냉장고에 들어 있으니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 오이가 늘 냉장고에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원할 때 수중에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빗소리. 창문과 베란다 난간과 나무 잎사귀에 내리는 빗소리. 비 오는 날의 부엌은 조금 쓸쓸하다.

181. 어두운 밤의 베란다에서, 멀리 반짝이는 역사의 불빛을 보면서 아이들의 귀가를 기다릴 때, 흐릿한 오후, 밀린 설거지를 하면서 부엌 창으로 건녀편 아파트 베란다에서 흔들리는 빨래를 보았을 때, 모두 잠든 깊은 밤,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 어쩌다 올려다 본 하늘에서 구름이 꼼짝도 하지 않아 마치 긴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런 때면 기억 창고 속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마치 다른 사람 보듯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러니, 나는 있는 것이다. 어디엔가, 내가 모르는 어느 깊은 틈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