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13, 2014

에쿠니 가오리-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2014. 9. 13

125. 때로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똑같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147. 일단 한 번 죽은 후에 다시 사니까, 야, 그거 편하던데.

일단 죽은 후에 다시 산다. 그 말이 나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일단 파괴한다는 것. 나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아버렸다. 파괴하면 돌아갈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을.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여름휴가 때나 설날 때나 홀로 아파트에서 지내고, 아르바이트하는 여고생에게 친구 대접이나 받는 오니시 씨처럼.

161. 오이의 초록은 어쩜 이리도 예쁠까. 표면의 짙은 초록과 가로로 동그랗게 잘랐을 때의 싱그럽고 엷은 초록.
밖은 비. 나는 부엌에서 혼자 오이를 바라보고 있다. 오이는 거의 늘 냉장고에 들어 있으니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 오이가 늘 냉장고에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원할 때 수중에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빗소리. 창문과 베란다 난간과 나무 잎사귀에 내리는 빗소리. 비 오는 날의 부엌은 조금 쓸쓸하다.

181. 어두운 밤의 베란다에서, 멀리 반짝이는 역사의 불빛을 보면서 아이들의 귀가를 기다릴 때, 흐릿한 오후, 밀린 설거지를 하면서 부엌 창으로 건녀편 아파트 베란다에서 흔들리는 빨래를 보았을 때, 모두 잠든 깊은 밤,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 어쩌다 올려다 본 하늘에서 구름이 꼼짝도 하지 않아 마치 긴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런 때면 기억 창고 속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마치 다른 사람 보듯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러니, 나는 있는 것이다. 어디엔가, 내가 모르는 어느 깊은 틈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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