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1, 2015

모리사와 아키오- 무지개 곶의 찻집: 2015. 1. 1

36. 하양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똑같은 커피잔도 범고래로 보이기도 하고, 판다로 보이기도 하니까... 틀림없이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물체의 존재 의의까지 간단히 바꿔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미와 내가 이제부터 걸어갈 미래도 마음가짐 하나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102.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그런 판단 기준만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05. 망설여질 때 로큰롤처럼 살기로 하면 인생이 재미있어지지.
늘 자신을 설레게 하는 쪽으로 가는 거야.
다소 위험이 따르더라도 말이야. 사람이란 뜻밖에 잘 쓰러지지 않거든. 열심히 하기만 하면 절실히 필요할 때 반드시 주군가가 손을 내밀어주지.

253.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건 너희 둘이 현재의 자기 자신을 충분히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란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아닐까? 괴로웠던 일까지 포함하여 여태까지의 인생을 통째로 긍정하기 때문에 너희는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거란다. 겹겹이 쌓아온 과거의 시간이 바로 지금의 너희니,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생각해보면 나도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운명'이나 성장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을 남기고 자살한 엄마에 대해서도, 지금은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쌍히 여길 여유까지 생겼다. 그 당시.. 밴드 맴버들과 꿈을 좇기 시작한 후로 내 인생은 확실히 바뀌었다. 불우하게 느껴졌던 소년 시절의 '운명'도 록으로 비약하기 위한 심적 계기로써 이용할 줄 알았고, 즐 따라다니던 정신적 고통도 음악 표현을 위한 거대한 에너지로 바꾸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255. 내가 쌓아온 것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이 쌓아온 것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 사람도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285. 가게를 나선 자매는 당장 고타로의 집이 있는 테라스로 달려갔다. 마리가 빨간색 리드 줄을 오른손에 붙잡고 왼손으로는 미호와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곶의 남쪽을 향해 초원 위를 걷기 시작했다. 고타로도 즐거운 듯 꼬리를 흔들며 자매와 나란히 걷고 있다.
조금씩 따스한 색을 띠기 시작한 여름의 엷은 석양이, 멀어져가는 두 사람과 한 마리 개의 뒷모습을 부드럽게 감싼다. 밖은 어느샌가 '쓰르륵쓰르륵'하는 쓰르라미의 구슬픈 노래로 채워졌다.
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뒷모습에 넋을 잃은 채 가만히 창가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자매가 갑자기 이쪽을 돌아보고 크게 손을 흔든다. 나도 볼 옆으로 손을 올려 살짝 흔들어주었다.

에쿠니 가오리- 장미 비파 레몬: 2014. 12. 29

43. 따끈한 햇살 냄새가 난다. 만나고픈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이 집은 푸근하다.

74. 고지마 사쿠라코는 모든 일이 시시껄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도, 가족도, 편집부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도,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일상의 그 시시껄렁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래전에 이미 포기했다. 그렇다면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85. 만사에 목표가 있으면 방법도 생기니까 편하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 그곳에서 일해서 월급을 받고 싶단 생각에 바라던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던 것처럼, 갖고 싶고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는다. 그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자신도 있고, 노력해서 안 될 만큼 무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97. 하루 중 저녁때가 가장 좋으면서도 가장 쓸쓸한 시간이다. 왠지 허전하고 불안해진다. 아이라도 있으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싫다는 미즈누마 정도는 아니어도 도우코 역시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유를 물으면 짐이 너무 버겁다고 대답하지만, 사실은 그저 귀찮을 뿐이다. 엄마란 인종이 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것이다.
사 온 것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집어넣은 도우코는 또 거실에 엎드려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은 늘 이렇게 바닥에 볼을 대고 유리창 너머로 하늘만 바라본다.

116.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장까지 봐 온 덕분에 청소를 끝내자 한가로워졌다. 저녁때 검둥이와 산책을 하는 것외에는 이렇다 할 일이 없다. 소파에 누워 팔걸이에 다리를 올려놓고 천장을 본다.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는다. 후드득 후드득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
도우코는 한 손을 소파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손가락으로 따스한 털을 헤젓듯이 검둥이를 쓰다듬는다. 눈을 뜨고 천장을 보고는 다시 감는다. 이 공간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후덥지근해서 에어컨을 켰다.

193. 아야는 자신이 아직도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에게 손을 빌려주는 엄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고는 놀랐다. 고개를 드니 하늘은 에쁜 파란색.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린 아야의 입과 코와 눈꺼풀과 귀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었다.

209. 시간이 멈춘 느낌인 것 같군요. 멈춰 있는 시간을 불현듯 발견한 느낌이랄까, 잊고 있었던 자신을 되찾은 느낌이랄까.
도우코는 가슴이 두근거려, 더는 마시고 싶지 않은 녹차를 한 모금 삼키고 진심으로 말했다.

224. 그 당돌한 태도에 사랑스러움을 느꼈지만, 츠치야는 자중했다. 이런 때는 우둔한 척하는 게 상책이다.

275. 도우코는 마룻바닥에 엎드려 볼을 대고 온 방을 적시는 색소폰 소리에 몸을 맡겼다. 예쁘게 꾸민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서. 왜일까, 이 사람이 내는 소리는 무언가를 적신다. 아무것도 와 닿지 않아야 할 장소에 와 닿는다. 자신이 지금도 여전히 외톨이란 기분이 든다. 야마기시는 물론 미즈누마와 곤도도, 아무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주 고독하고, 그리고 안심이 되는 일이다.

370.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이 연애의 시작에 부수되는 절차, 사소하면서도 멋지고 행복한 절차 하나하나를, 어떻게 쌓아가고 끌어가야 하는지, 그 과정과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384. 에쿠니 가오리 씨의 소설을 읽다 보면 때로 연애란 어딘지 모르게 죽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자신이 아닌 무엇으로 변해가는 그 감각. 육체는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허공을 떠돌면서 어딘가 얼토당토않은 곳으로 가려한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도저히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런 불안이 전신을 감싸 가끔은 공포마저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감미로운 공포다.
아무튼 사랑과 연애는 언제든 사람의 혼을 빼앗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정말 연애란 불가사의하고 성가신 것이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고,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친절해지니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었나 하고 혼자 키득키득 웃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애틋함과 슬픔과 분노에 머리칼을 쥐어뜯고, 질투와 증오에 휩싸이고, 세상의 행복한 것 모두를 미워하는 자신을 깨닫고는 입술을 깨물 때도 있다.
그런것 역시 하나의 작은 죽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이성과 도덕성이 무너져, 자신이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하지만ㄷ 동시에 그것은 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랑을 하는 순간,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이 반짝 눈을 뜨고 숨 쉬기 시작하니까.

386.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아도, 내 안에는 어쩌면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르는 많은 인생이 있고, 등장인물들이 앞서 그것을 찾아내서는 스르륵 내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야 그 인물이 나와 어느 면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다 보면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소리 없이 드러난다. 모두가 옳기도 하고 모두가 그르기도 하다. 모두가 사랑스럽고 모두가 어리석다. 모두가 거짓말쟁이이고 모두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직하다.

388. 연애는 어느 한 점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얼굴이든 목소리든 성격이든, 아무튼 한 점을 돌파하는데서 연애는 시작한다.
평균적으로, 두루두루, 대충, 그런 걸 생각하니까 연애를 못 하는 거지요.

390. 장미 비파 레몬은 어쩌면 결혼과 사랑이란 아름다고 이상적인 말 뒤에 가려진 여자들의 근원적인 고독을 얘기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