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3, 2014

야마다 에이미- 돈 없어도 난 우아한 게 좋아: 2014. 8. 3

20. '너'라고 불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상대에게 살짝 얕보이는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남자가 자신을 얕보는 걸 흐뭇하게 느낄 때,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22. 지금까지 사카에만의 공간이었던 이 집 구석구석에 내 냄새가 스며든다. 사카에가 건네준 보조 열쇠를 처음 사용하던 날의 흥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열쇠 구멍에, 나를 불어넣었다. 그 소리, 찰칵. 무언가를 덥석 깨문 기분이었다. 남자가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 것은, 생활의 터전 모두. 그는 무척이나 친절하다. 몸은 물론 갖가지를 내게 던져 준다. 내던지는 그 멋진 폼. 자신의 세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도 아름다움이라는 느낌이 든다. 집착 따위를 매력의 하나로 생각하는 저자의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더니, 나 애당초 별다른 세계 갖고 있지 않았어, 하며 그가 웃는다. 별거 없는 세계. 그것이 얼마나 삶을 편안케 해 주는지.

35. 남들이 생각하는 듬직함과 ㅐㄴ가 원하는 듬직함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나는 체격이 크고 경제력이 있다고 안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편리함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내가 하려는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사람을 만났을 때, 듬직하다 싶어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허풍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그런 순간,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말이 많아진다. 손님을 대하는 장사를 하는 주제에 무뚝뚝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나이지만, 전하고 싶은 말이 쏙쏙 전해지는 사람 앞에서는 엄청난 수다쟁이가 된다. 하지만 그런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귀다 헤어진 몇몇 남자와 많지 않은 친구들 말고는. 나는 어쩌면 남들 눈에는 외롭게 나이만 먹은 여자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정녕 외로움을 느끼는 때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방글거리며 관계해아 하는 경우이다. 통하는 말이 얼마 안 되는 사람과 가까스로 소통해야 하는 장면에 부딪치면, 왠지 모르게 비참해진다.

48. 그는 나날의 식량을 귀여워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일상을 어여삐 여기는 사람을 달리 모른다.

다다미 위에 누워 옆에 있는 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잠이 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가 내리고 있다. 빗방울이 빗물 통을 규칙적으로 두드린다. 왠지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옜날 집의 효과다.

67. 경험은 사람에게 배움을 선사하지만, 사람을 강하게 하지는 않는다. 강한 척하는 기술을 터득하게 할 뿐, 오히려 나는 점점, 겁쟁이가 되어 가고 있다. 겁날 것 없던 때가 그립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겁쟁이임을 스스로 알기에 잃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경험이 일궈 낸 풍요로운 겁쟁이.

80. 소극적인 룰이 남녀 사이에 적용되는 순간, 열은 이내 정상으로 돌아간다. 예의 바른 연애가 따분하다는 것은 고릿적에 알아 버렸다. 착함이란 아이들만의 특권이다. 그리고 버릇없음이란 어른에게만 허가되는 특허다.

100. 아까워 내밀지 못한 마음은 쓸모가 없어지고 끝내는 유통 기간마저 지나고 만다. 그런 것들만 마음에 꼭꼭 보존하다 보면 새로운 마음이 들어찰 장소가 없어진다. 그태껏 나는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늘 아까워한 탓에 결국은 썩어 버리게 했다.

하지만 사카에에게는 마음껏 애정을 쏟는다. 따뜻한 물을 펑펑 쓰듯 함부로 쓴다. 그래도 나는 언제든 촉촉하게 젖어 있다. 왜냐하면 그 역시 편리한 남자로 내게 애정을 하염없이 쏟으니까. 영원히 타인 우선을 신조로 하는 너그러운 인간은 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알았어. 나를 위해 그래 줄 수 있는 인간을 위해서라면, 쉽사리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는 것을.

107. 사카에는 다른 남자들이 젊은 여자의 몸을 칭찬하는 것처럼 평범하게 치켜세우지 안흔ㄷ나. 내가 나인 증거를 찾아, 그 점을 칭찬해 준다. 그가 말하기를, 지우의 몸에는 결점이 없다나. 정말 고마운 말이다. 툭 튀어나온 배는 큐피처럼 유머러스하단다. 여기가 갓난아기처럼 귀여워, 란다. 푸훗, 눈물이 날 지경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