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11, 2014

에쿠니 가오리- 마미야 형제: 2014. 10. 12

84. 매미가 운다. 저녁 나절인데도 하늘은 아직 푸르고 여름 냄새가 난다.

121. 욕실 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어서서, 샤워 꼭지를 틀며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좋아했던 남자는, 내 몸을 마음에 들어 했을까. 한순간이라도 좋아. 다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 사랑해 주었을까?
세상에 단 하나가 아닌, 흔해 빠진,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아무렇게나, 요리코는 자신의 몸을 씻는다. 깊은 밤, 바깥에서 빗소리가 들려온다.

155. 가을은 쿠즈하라 요리코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긴소매 셔츠의 산뜻한 감촉이 기분 좋다. 타이츠에 가죽 구두를 맞춰 신으면 발걸음도 힘 있고 등줄기가 꼿꼿이 펴지는 느낌이 든다.

224. 아무것도 모르면서 좋아하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데 마음이 끌리기 때문에, 좀 더 알고 싶어져서 다가가려는 게 아닐까.

245. 혼마 나오미는 추운 계절을 좋아한다. 눈이 내릴 정도로 추운 계절이 아니라, 그 직전의 딱 요맘때 같은 날씨. 공기가 팽팽하고 맑아서, 자신의 피부까지 투명해지는 느낌이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 감촉도 무척 근사하다.

288. 자신 안에서 너무나 많은 행복을 이끌어 낼 줄 아는 형제에게, 오늘과 내일은 언제나처럼 소박하고 즐겁게 흘러간다. 가끔은 의기소침하게 흘러갈지라도 이들에게는 연애와 또 다른 담백한 인간 관계가 있다. 추억을 나누고 즐거움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는.. 어쩌면 현실에서는 그렇게 담백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연애에 빠지는 것보다 어렵지 않을까.
이 겨울, 따뜻하고 유쾌한 기운이 살아 숨쉴 것만 같은 형제의 집에 초대 받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들면서, 쉽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형제의 그 후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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