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3, 2014

에쿠니 가오리- 울 준비는 되어 있다: 2014. 6. 14

20. 문제는, 하고 손목 시계를 힐끗 보면셔 야요이는 생각한다. 문제는, 고양이의 소재가 아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50. 우리에게는 항상 '지금'밖에 없다.

70.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결혼도 결혼 생활 얘기도 그만 하고 싶었다.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난감해진다. 나는 도로에서 본 우리 집의 외관과 현관에 한 걸음 들어섰을 때의 분위기, 슬리퍼와 잠옷과 부엌과 침실에 놓여 있는 읽다 만 책, 욕조에 물을 받을 때의 행복한 물소리와 피어오르는 김의 냄새를 떠올렸다. 커버 위에 짙은 갈색 담요가 덮여 있는 따뜻한 침대도.

97. 그것이 괜한 허세라는 것은 알고 있다. 미요코가 어떤 표정으로 걷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요코는 누군가 보고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누군가가, 아마도 신지가.
다다유키를 만나기 전에, 신지를 사랑했다. 학생 시절의 연애, 너무도 먼 옛 일이다. 우연히 어디선가 만난다 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신지는 미요코의 삶의 버팀목이다. 신지를 사모해서가 아니라 신지가 곁에 있었던 때의 젊은 자신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다.

109. 루이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고, 나츠메보다 일곱 살 연하였다. 키는 큰데 체형은 소년처럼 호리호리하고, 그러면서 손만 유독 컸다. 그 손에 안기면- 루이는 껴안을 때 나츠메를 보호하듯, 또는 떠받치듯 한 손은 등에 다른 한 손은 뒷머리에 대고 힘을 주었다- 모든 것, 정말 이 남자의 품안에 있지 않은 모든 것이 불필요하게 여겨졌다.

115. 나는 혼자 사는 여자처럼 자유롭고, 결혼한 여자처럼 고독하다.

118. 루이와의 정사가 나츠메에게 남긴 것은 봇물이 쏟아진 듯 무수한 기억이었다. 자신이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한때의, 사랑 하나 만으로 어떻게든 인생을 꾸려 나갔던 한때의 본질적인 기억이었다.
그러나, 정사는 끝나고 말았다. 더구나 나츠메가 그것을 끝내기 전에, 모든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143. 지난 1년, 사실은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모래를 퍼 올리면 우수수 떨어지듯, 그 일들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여겨진다. 요즘은, 일상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46. 시리아. 나라 이름의, 그 너무도 먼 울림에 나는 뭐라 대꾸하면 좋을지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모르는 것, 상상할 수 없는 것,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 그런 것들은 나를 늘 난감하게 한다.

148. 나는 눈을 감았다. 속눈썹 안으로 오래 전에 살았던 동네의 공기와 거리와 가게와 강과, 아름다운 초록 버드나무 가로수가 흐른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다. 눈을 뜨면 그곳은 이미 어두컴컴한 술집이고, 모두들 과거도 가족도 고향 따위도 갖고 있지 않다는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나는 가끔 불가사의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술을 마시는 이 순간, 코시가 잠들어 있는 아파트, 속옷 가게가 있는 고향 동네, 시리아란 나라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까 하고.

154. 테이블 위에 나타난 이야기는 지금 각자가 안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보다 훨씬 선명하고 발랄한 색채를 띠어 간다.

163.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168. 어린애 같은 짓일지 몰라도, 나느 오래 전에 사랑한 남자를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남자와 함께 살았던 때의 내 모습 그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태를 고독하다 한다면, 나는 고독만세라 외치고 싶다.

170. 내 뜻에 반하여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남자와 둘이서 처음 식사한 여자처럼. 다케루의 일거수일투족에, 거의 온몸의 신경이 집중된다.

177. 나의 여행은 늘 그런 식이었다. 나 스스로 갈 곳을 고르고,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모으고, 혼자 여행하면서 끝내는 우울해지고 만다. 추위와 더위에 진저리를 치고, 고독을 고통스러워하고, 이런 곳에는 두 번 다시 안 온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일본으로 돌아와 얼마 있지 않으면,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갈 곳을 정하고 돈을 모으고, 필요한 것들만 꾸려서 집을 뛰쳐나간다.

183.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고, 겁나는 것도 없었다. 아니 무엇엔가 두려워하는 것만이 겁났다.
우리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서로를 살아하고 싶었다. 또 언젠가 어느 한쪽의 마음이 변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떠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208. 사람들이 만사에 대처하는 방식은 늘 이 세상에서 처음 있는 것이고 한 번뿐인 것이라서 놀랍도록 진지하고 극적입니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었겠죠.

212. 그 여자들에게 사랑과 결혼은 이미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도 자신의 전 존재를 보듬어 주는 따뜻한 울타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가갈수록 멀어지기에 끊임없이 희구해야 하는 꾸밍며 또 영원히 사로잡을 수 없기에 허허로운 절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불꽃이 제 몸을 불살라 언젠가는 싸늘한 재로 변하듯, 타오르는 사랑이란 스치고 지나가는 열병 같은 것일 뿐, 사랑의 끝에는 언제든 고독한 자기 자신만이 남는다는 비극적 진실에 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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