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8, 2014

에쿠니 가오리- 한낮인데 어두운 방: 2014. 6. 7

51. 이 방은 환하게 불을 켜놓으면 오히려 쓸쓸해 보인다고 존스 씨는 생각합니다.

53. 미야코 씨는 세면대를 닦으며 존스 씨를 생각합니다. 필드 워크에 나선 이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 생각에 빠져 있는 겁니다. 존스 씨가 마치 자신의 거리인 양-미야코 씨의 동네이기도 하고, 미야코 씨가 태어난 나라이기도 하지만- 깅릉ㄹ 안내해주었던 것, 하늘이며 길이며 집들이 모두 평소와 다르게 보였던 것, 고작 한 시간이었는데도 뭔가 여행 같았던 것.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생각나는 것은 헤어질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너무 허둥지둥 돌아서 와버린 것 아닐까. 미야코 씨는 생각하빈다. 너무 쌀쌀맞았던 것도 같고, 조금 무례했던 것도 같아. 감사의 말을 전할 때도 존스 씨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을 미야코 씨는 기억합니다. 얼굴을 보면 헤어지기 힘들어질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하지만 가슴 설레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므로 여하튼 빨리 집 안으로 도망쳐 들어오고 싶었던 겁니다.

54. 약간의 특별한 일은, 일단 말해버리고 나면 이전만큼 특별하지는 않은 게 돼버리니까 말이죠.

91. 멀리까지. 미야코 씨 귀에는 그 말이 특별한 울림으로 와 닿았습니다. 특별한, 그리고 자유로운 울림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거리 안에 '먼 곳'이 있다는 것을 미야코 씨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존스 씨와 걸으면 모든 것이 낯설고, 신선하고, 무섭도록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115. 아무 준비도 없었기 때문에 더 가보고 싶었던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미야코 씨는 자신이 지금 특별한 시간 속에 있다고 느꼈으며,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그 특별함이 일그러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대중목욕탕'이라는 말은 미야코 씨에겐 유원지나 동물원과 마찬가지로 엉뚱한 말이었고, 존스 씨와 함께 있을 때면 엉뚱함은 유쾌함과 동의어였습니다.

118. 시간이 이른 탓인지 탈의실에도 여탕 안에도 달리 사람은 없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도 그렇고, 이렇듯 낯선 장소에 와 있는 자기 자신에게 놀란 미야코 씨는 멍하니 느린 동작으로 옷을 벗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지금의 상황이 어쩐지 불안하면서도 동시에 갑작스러운 흥취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갑작스러운 흥취, 그리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에서 비롯된 홀가분함을.

119. 달리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미야코 씨를 무척 자유롭고 사치스러운 기분에 젖게 했습니다. 타일에 플라스틱 의자를 내려놓았을 때 나는 딱 소리까지도 유쾌하게 들립니다. 그득한 목욕물과 수증기의 좋은 냄새가 납니다.

바깥은 한낮의 해가 내리쬐고 먼지 섞인 후덥지근한 냄새가 났습니다. 하지만 미야코 씨에게는 그것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피부에서 피어오르는 비누 냄새를 두드러지게 해주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발걸음까지 아까보다 더 가볍게 느껴집니다.

132. 계단 아래,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생생히 살아 숨쉬는 존스 씨가 서 있습니다. 미야코 씨는 움직이기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미야코 씨 자신이 나중에 생각한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기대 이상'의 기쁨이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눈앞에 있는 존재가 바로 믿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185. 자신 주변에 확고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며, 인생을 사노라면 발밑이 흔들리거나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져버리는 일을 종종 겨끽 마련입니다. 존스 씨 생각에 미야코 씨는 단지 진리를 발견한 것뿐이었습니다.

186. 확실히 나는 존스 씨와 있으면 평소 못 느끼던 것을 많이 느꼈어. 바람을, 햇살을, 새소리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말았어. 자유를, 키득키득 웃고 싶어질 만한 비밀스러운 떨림을,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마음 든든함을 느끼고 말았어. 히로짝과 있을 때에는 결코 느끼지 못하는 신선한 기분을.
내가 세상 밖으로 나와버린 건, 느끼지 말아야 할 것들을 느껴버린 탓인지도 몰라.

231. 그건 그렇고 이 집안은 그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전혀 다른 장소가 된다, 라고. 요리 냄새가 감도는 것만으로도 멋집니다. 요 며칠 어둡고 음울했던 히로시씨 집이, 심지어 단란함과는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복도며 세면실 같은 장소까지도 갑자기 생동감이 돌면서 따뜻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는지는 둘째 치고, 이 집이-요컨대 히로시 씨 자신이-미야코 씨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습니다.

234. 급기야 미야코 씨는 기억의 홍수에 삼켜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집착해준 히로시 씨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 올라오고, 이런 현실 앞에서는 존스 씨와의 이런저런 일들도 급속히 실체를 잃고 모호하게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해 버리고 싶다는 욕구에 거의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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