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2, 2014

요시모토 바나나- 아르헨티나 할머니: 2014. 11. 30

12. 외동딸인 내가 엄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무엇을 얻었는지는 뭐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내 눈동자에 늘 깃든 어떤 빛으로 표현할 수 있다. 거울을 보면 내 눈에 전에는 없던,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커다란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이가 덜덜 떨리는 공포와, 평생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병원 복도의 어두운 풍경을 본 대가로.
엄마의 몸에서 엄마의 혼이 떠났을 때, 나는 그 싸늘한 몸을 보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아아, 엄마는 이걸 타고 여행을 했던 거야.'
그래서 나 역시 내 몸을, 자동차를 꼼꼼히 정비하듯 소중히 다루게 되었다. 기름이 하이옥탄인지 레귤러인지, 산길에 강한지, 눈이 내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페인트로 도장을 하면 좋은지, 연비가 떨어지는 음식은 무엇이고 어떤 부담을 주는지. 내 몸을 자동차라고 생각하자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나는 예전보다 오히려 건강해졌다.

20. 왜 사람은 그런 상상이나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일까? 사실은 병의 증세에 따라, 가족의 입장은 그때그때 얼마든지 달라지는데.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변화가 두려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23.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살아 있다. 절대 마음속에서 미리 묻어서는 안 된다.

31.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한없이 자유롭다는 느낌과 앞만 보고 달리지 않으면 망가져 버릴 듯한 고독이 한꺼번에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도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좋은 일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36. 겨울 하늘과 삼 층짜리 낡은 건물과, 울창한 숲 같은 정원, 메마른 식물의 달큰한 냄새와 톡 쏘는 고양이 오줌 냄새가 섞인 겨울 공기가 이곳에서만 결계 같은 역할을 하면서 싸늘하게 빛나고,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새소리가 마치 노랫소리처럼, 피리 소리처럼 드높게 울려 퍼진다.
저 너머의 먼 세계에,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있다. 자동차가 달리고, 집들이 있고, 대형 슈퍼마켓이 있고, 나날의 잡다함이 있고, 시끌시끌함이 있는 세계가.
아아, 고요하다. 발을 들여놓고 보니, 모든 것이 아주 평화롭다.

47. 인생의 톱니바퀴가 하나만 어긋났어도, 어쩌면 파리 같은 곳에서 이런 분위기의 여자와 함께 이런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49. 그림움이란, 모든 것이 달라진 후에야 비로소 싹트는 것,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61. 아르헨티나 빌딩 안에서는 시간이 사람의 머릿속 힘으로 완전히 멈춰져 있으니까, 시간이 특별하게 흐르는 그곳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나뉨이 없어서 그런 꿈도 꿀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75. 정말 아름다운 여자는, 보고 또 봐더 어떤 얼굴인지 기억할 수 없는 법이지.

77. 나는 유리 씨가 한 줌도 안 되는 아빠의 돈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만 했어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79. 그 무렵 유리 씨는 낡고 어두운 집 속으로, 그 칙칙한 바탕색 속으로 조금씩 녹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기만 유독 색깔을 띠고 도드라졌다. 바로 그것이 생명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배경에 점차 녹아들듯이 죽어 가는 삶이 옳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84. 한없이 먼 이국을 여행하는 것이나 자기만의 유적을 만드는 것이나 그 시도의 근원은 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대에서 어떤 시대로 여행을 하고, 끝내는 사라진다. 영원 속에 소박한 저항을 새기는 것, 그뿐이다.

87. 사람이 왜 유적을 만드는지 알아?
좋아하는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오늘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서일 거야.
그건 인간이 영원토록 지니는 허망한 바람인 거야. 그리고 위에서 보면 목걸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신마저 부러워 매혹당하는 아름다운 빛의 알갱이지, 라고 유리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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