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7, 2013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2013. 12. 27

40. 월요일 아침, 나는 회사로 가는 남편이 싫어서 그만 입이 부루퉁해진다. 어서 다음 주말이 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현관에다 구두를 내 놓는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난 순간, 나 자신도 놀라울 만큼 안도감의 물결이 밀려온다. 안도와 피로, 그리고 잠.
나는 침대로 돌아와 죽은 듯이 잠을 잔다. 평일이다. 다시 눈을 뜨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자, 일도 꽤 진척이 있을 것이다. 저녁때가 되면 칵테일을 만들어 가볍게 한 잔 하자. 창문도 활짝 열고, 오늘 하루를 멋지게 보내리라. 남편은 창문을 열어 놓으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55. 정말 나는 몰랐으니까.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도. 연인과 함께 지내는 밤의 달콤한 친밀감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자는 남자의 팔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남자의 단순함, 남자의 복잡함. 남자의 관용, 남자의 안심.

56. 나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중반까지 매일 꼼꼼하게 일기를 썼는데, 그러다 보니 월요일마다 목표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거창하게 목표랄 것도 없는, 이번 달에는 대청소를 한다, 리포트를 완성한다, 몸무게를 2킬로그램 줄인다는 등의 메모에 불과했지만, 마지막에는 꼭, 혼자서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이라고 썼다. 매달, 몇 년 동안이나.

63.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나는 남편과 함께 본 도치기의 별 밤과 나가노의 고추냉이밭 만큼이나 내가 보아 온 풍경과 남편이 보아 온 풍경을 사랑한다.
1년에 몇 번 남편의 고향에 간다. 시댁에는 시부모님과 시할머니가 계신다. 근처에 친척과 친구들도 산다. 그 동네의 색채와 따스한 햇살, 큰길과 신호와 너른 강과 초등학교와 책방과 옛날 현청건물과 어렸을 때부터 단골이라는 허름한 중국집, 지름길과 샛길, 그 풍경 하나 하나의 멀고 먼 느낌, 그 친밀감.
나는 남편을 타인으로 의식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65.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화장을 하는 습관이 없었던 나다. 깨끗하게 세수를 하고 그냥 있는 편이 상쾌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집안에서는 화장을 안 한 채로 지냈다. 밤새 일하고 남편이 출근을 한 후에야 잠자리에 들어 그럴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있다. 실제로는 립스틱이 아니라 립글로스를 살짝 바르는 정도지만, 그래도 화장은 화장이다.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 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

72. 느닷없는 말이지만, 나는 곧잘 노래를 부른다. 낮이면 방에 멍하니 있을 때, 밤이면 산책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몸에 좋다는 것을 결혼하고 알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서 좋다. 폐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좋고.

73. 노래는 참 신기하다. 단박에 몸과 마음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노래를 불러도 그렇고 들어도 그렇고.

사랑의 생활은 가혹하니까 도피 수단 하나 둘쯤은 반드시 필요하다.

77. 1년에 한 번 정도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아니 초심으로 돌아간다기보다 초심을 억지로 되새긴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될 테지만.

84.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골치아파진다.

87. 결혼한 (또는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 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

102. 결혼은 움직이는 보도 같은 것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고 만다. 어딘지도 모르고, 어쩌면 가고 싶지도 않은 장소로. 그래서, 거기서 가만히 있자고 생각하면 그만 뒤로 걷게 된다. 움직이는 보도에 저항하기 위해.

111. 외로움만이 늘 신선하다.

117. 올바름이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결혼하고서 딱 한 가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올바름에 집착하면 결혼 생활 따위 유지할 수 없다. 나는 남편이 내게 어리광을 피우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올바르지 않아도 마음껏 어리광을 피우게, 남편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주면 여기에 있는 것이 나의 필연이 되고,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기에 있을 필연성이 없어지고 만다. 이웃에 사는 연인처럼 행세해서 안 될 것이 무어란 말인가?
나는 가능한 한 그렇게 하고 있다. 어리광을 피우고 어리광을 피우게 하는 것은 어른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니까.

124. 화해란 요컨대 이 세상에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
킵 레프트는 정말 처절하다. 그리고 때로는 터무니없을 만큼 어리석다.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편하니까.

125. "목욕하기 전에는 침대에 들어오지 마."
끝내 그런 말을 뱉는다. 그러면 남편은 거실에서 잔다.
나는 잠시 모르는 척하지만, 그러다 불안해진다. 미안하기도 하고, 또 왠지 유난히 외롭기도 해서 여름이면 타월 이불을 겨울이면 이불과 베개 두 개를 들고 거실로 나간다. 우선은 자고 있는 남편의 머리 밑에 베개를 끼워놓고, 그 옆에 내 베개를 놓고 나란히 눕는다. 신기하게도 그러면 편히 잠든다. 남편에게 딱 달라붙어서.

130.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131. 단 일주일도 혼자 자기 싫다.

132. 생활이란 맛보는 것이다. "Relish",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그렇게 살고 싶다.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맛보듯이.
찰나적이고 싶다. 늘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은 함께하는 생활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오면 조금은 울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면, 아마 더 울지도 모르겠다.

135. 버들가지에 부는 바람처럼, 그저 받아넘기기만 할 뿐 세월이 흘러도 서로에게 길들지 않는 남녀의 행복하고 불행한 이야기.

143. 가장 중요한 거짓말은 자신을 위해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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