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31, 2013

에쿠니 가오리- 반짝반짝 빛나는: 2013. 12. 31

56. 눈치빠르게 먼저 방에 들어가서 나는 무츠키의 침대에 다림질을 하였다. 이런 겨혼 생활도 괜찮다, 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 불현듯, 물을 안는다는 시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79. 새로운 하루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무츠키의 기본 방침이다.

119. 내 눈꺼풀을 살며시 만지면서 무츠키는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말한다.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마치 물의 우리처럼, 부드러운데 움직일 수 없다. 무츠키는 내 기분을, 나는 무츠키의 기분을, 이렇듯 또렷하게 알 수 있다. 하네기를 불러낸 일로도, 휴대폰이 울린 일로도, 나는 이미 무츠키를 비난할  수 없다. 눈꺼풀에 느껴지는 무츠키의 손가락. 왜 우리는 이렇게 늘 서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일까.

129. 미즈호가, 나한테 아내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고 그랬어. 나한테 필요한 것은 상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각이라고.

138. 눈을 뜨자, 블라인드로 새어드는 햇살이 시트에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타올이불을 걷어차고 몸을 뒤척이면서 엎드려 두 손을 베개 밑에 집어넣는다. 무츠키는 벌써 나간 모양이다. 옆 침대는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고, 나는 멍하니 방 안을 바라본다. 빛이 비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공기 중의 미세한 먼지들. 여름 날의 아침은 왠지 무척 나른하다.
거실은 에어컨이 적당한 온도로 켜져 있고, 휑했다. 배경 음악으로는 프레스코발디의 오르간 곡이 흐르고 있다. 어항에는 금붕어, 냉장고에는 차가운 샐러드, 방 안은 밝고, 하얗고,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나는 멍한 머리로, 잠시 거기에 서 있었다.

152.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흘러가. 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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