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30, 2013

에쿠니 가오리- 달콤한 작은 거짓말: 2013. 12. 31

38. 정말 반가워하는 얼굴이다. 여자는 이렇듯 자기감정을 주저 없이 드러내는 용감한 생물이라는 것을, 사토시는 오랜만에 떠올렸다.

49. 사토시와 결혼하기 이전의 루리코를 잘 알면서 지금의 루리코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것은 루리코가 결혼하고 나서 발견한 것 중 하나이다.

59. 세상에는 참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구나, 하고 루리코는 감탄했다. 서른 살이 다 되어 번역가를 꿈꾸는 남자도, 연인을 위해 봉제 인형을 찾아다니는 남자도, 딱 두 번 만났을 뿐인 테디 베어 작가를 식사에 초대하는 남자도, 루리코는 난생 처음이었다.

63. 굶주림.문득 깨달았다. 사랑이 아니라 굶주림이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게임을 하는 남편 옆에 붙어 앉아 있는 것도.
깨닫고 보니 정말 온전히 납득이 간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사토시에게 굶주려 있다. 기아 상태. 그 생각은 루리코에게 크나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70. 난 당신 회사에도 책상에도, 상사에게도 동료에게도, 술집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여자에게도 질투를 느껴.

73. 쓰가와는 루리코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둘 다 아무 말 없었지만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하고 마음 편한,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이었다고 루리코는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루리코는, 이것이 자신과 쓰가와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토시와도, 까맣고 긴 머리를 한 쓰가와의 여자 친구와도 아무 상관 없는, 이곳만의 일.

78.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둘이 살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탓인지, 사토시는 다른 사람과- 아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거북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80. 애당초, 혼자인 게 편하고 다른 사람과 일정한 기를ㄹ 두는 것도 쾌적함을 위한 필수 요소라 여기는 듯한 면이야말로 사토시와 루리코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었다.
친구란 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

93. 대꾸한 사토시는 자신도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할 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 잠자코 있었다. 회사에 갔다가 퇴근해 다시 회사에서 돌아오는, 그게 전부인 하루.

95. 남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는 것 또한 잠자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루리코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97. 이러고 있으면 거역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루리코는 생각한다. 이대로 잠들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99. 스토리는 딱 한 번뿐이라서 아름다운 거예요. 우리 인생처럼.

116. 침대 시트 안에서 하루오는 토라진 얼굴로 물었다. 그 얼굴이 루리코는 좋았다. 말과 감정과 표정이 이어져 있다. 그것은 편안함을 안겨준다.

121. 시호는 확실히 귀엽지만, 시호와 함께 있으면 사토시는 왜 그런지 루리코의 좋은 점만 떠오른다.

125. "나 연애해." "That's normal." "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싶지 않아? 왜?" "사실은, 남편만 사랑하고 싶어." "난감하네."

131. 무딘 남자일수록 시시한 여자한테 낚이니까.

138. 대화는 신기할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졌다. 숨겨야 할 일이 있다 보니 해야 할 이야기도 절로 술술 나온다.

150. 사이는 좋지만 대화가 별로 없는 걸. 마음속으로 덧붙인다. 내가 오늘 어떤 일을 했는지도, 하루오는 알지만 사토시는 알지 못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보이는 대로 독파해버리는 추리소설 작가 이름도.

155. 하루오를 생각했다.
얼른 도쿄로 돌아가 하루오를 보고 싶다, 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사토시 곁에 있을 때면 루리코에게 하루오의 존재는 전혀 현실감이 없다. 이 세상에 쓰가와 하루오라는 남자가 정말로 존재하기는 하는지, 천장의 통나무를 노려보며 루리코는 생각했다. 천장의 통나무는 확실히 존재한다.

162. 침대는 눈앞에 있고, 모든 것이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처음 본 이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마치 이렇게 될 것을 학창 시절부터 알았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시호는 사토시가 잊고 있던 무언가였다.

177. 시호의 쾌할함은 자신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작은 냇물이라고 사토시는 생각한다. 이 냇물만 있으면 루리코의 섬세함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179.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못 돌아갈지도 몰라. 그게 두려워서 가는 거야." "그럼, 못 돌아가면 되겠네." 말을 꺼내기 무섭게 하루오는 막무가내로 루리코를 끌어당겨 안았다. "돌아갈 수 없다면, 안 돌아가면 돼."

184. 시호와 함께 왔던 가게에 루리코를 데려오는 행위는 시호에게 못할 짓일까 루리코에게 못할 짓일까. 아마도 양쪽 모두에게 못할 짓이지 싶었지만 사토시에게는 죄책감이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이제는 두 여자 모두 소중했다.

185. 사토시는 말이 없다. 변변히 먹지도 않는다. 그것은 어제오늘 시작된 일은 아니다. 가게를 나와 역까지 걷는 동안, 루리코는 그것에 대해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하루오와 식사할 때와 같은 행복을 사토시에게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사토시는 온화하다. 사토시는 성실하다. 그건 루리코도 알고 있었다.

187. 하루의 시작. 이런 일상에 불만은 없다고 루리코는 생각한다. 쓸쓸함은 아마도 인간이 안은 근원적인 문제이지 사토시 탓은 아닐 것이다. 자기 스스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설사 남편이라도- 구원해줄 수 있는 성격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토시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깎으면서 루리코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루오와 함께 있을 때 쓸쓸하지 않은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토록 충만감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은.

194. 머리맡 라디오에서 고리타분한 테크노 팝이 흘러나온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침대까지 와 닿아 뺨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이다. 하루오의 방은 숲 속 같다고 ,루리코는 생각했다.

196. "왜 거짓말을 못하는지 알아? 사람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 혹은 지키려는 사람에게."

203. 요즘 루리코는 매 순간 흔들린다. 이 집에 있을 때는 사토시가 전부인 듯 느껴지고 하루오와 헤어지려 마음먹는다. 반대로 하루오 곁에 있을 때는 하루오만 있으면 될 것 같고 사토시와 헤어지고 싶어진다. 내게는 생각이란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뺨을 괴고 앉아 베어 하나를 바라보면서 루리코는 생각한다. 나는 눌 눈앞의 일만으로도 힘겨워지고 만다.

208. 하루오의 인격이 좋았다. 하루오의 인격이 깃든 모든 것, 사소한 표정 변화며 팔이며 입술, 체온, 정강이, 머리카락, 그리고 감정에 솔직한 그 목소리가 좋았다.

215. 루리코는 잘 모르겠다. 펑펑 울고 나면 과연 후련해질까.
하루오가 만드는 공기, 하루오가 선택하는 언어, 그 방에서 마시는 커피. 하루오의 손목뼈, 발바닥 모양. 목이 좀 늘어난 티셔츠 사이로 엿보이는 쇄골. 갑자기 활짝 웃는 얼굴. 토라진 말투, 담배를 피울 때 찡그리는 눈썹. 루리코를 끌어안는 힘 있는 팔, 입술이 녹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키스, 하루오의 살냄새.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현기증이 난다.

227. 둘이 있어도 외롭지만, 그럼에도 둘이 있고 싶은 것.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