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8, 2013

에쿠니 가오리- 부드러운 양상추: 2013. 12. 28

19. 오랜만에 여동생과 쇼핑에 나섰다. 그냥 장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옷이나 구두, 목도리나 과자 같은 좋아하는 것, 아름다운 것, 마음이 화사해지는 것을 사는 게 쇼핑이다.

34. 내가 모르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리고 내 문제는 무슨 일이든 그만둘 때를 모른다는 것이다. 콩을 뿌리는 일도, 비눗방울을 날리고 그림을 그리는 놀이도, 이제 더는 기회가 없을지 모르는 연애도.
참 싫증을 안 내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비눗방울을 날리거나 그림을 그릴 때. 하지만 나는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74. 내가 알기 전부터 미역귀는 분명히 가게에 존재했을 텐데, 그걸 본 기억도, 저게 뭘까 궁금해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사람이란 관심 없는 것은 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청춘- 수지 로톨로

128. '된장'의 긍지는 과연 무엇일까. '마지막까지 관찰자로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 무리에 끼워준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진정이 아니다. '된장'은 거기에 있으면서 없는 자이고, 그 본분은 어디까지나 세계의 관찰에 있다. 가만히, 빈틈없이,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

147. 그 시절은 그 시절 나름대로 즐거웠다. 발 닿은 곳이 어디든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제는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나 인생이나 안심할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여행이나 외식 같은 소소한 즐거움만은 안심하고 즐기고 싶어 예약을 하고 나선다.

220. 해가 쨍쨍하고 기온도 높았지만 때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녔다.

여행지에서의 그 무모할 정도의 식욕이, 나는 유쾌하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일상이 아니니까 모든 것이 가공의 얘기 같고, 음식도 몸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쓱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226. 고요한 음식이다 (음식에는 고요한 것과 시끌벅적한 것이 있다). 포타주는 철저하게 고요하고, 나는 그 점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227. 기계의 최대 위협은 주종 관계가 뒤틀린다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데 사용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심 조심 무서워 절절매면서, 아무쪼록 화내지 마세요, 작동해 주세요, 하고 부탁해야 한다. 부탁한다기보다 기도한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작동하지 않아도 기계는 사과하는 법이 없으니 내가 사과할 수밖에 없다. 미안해요, 내가 뭘 잘못했나 보군요, 그런 거군요.
한편 기계는 손도 발도 없어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보살펴줘야 한다. 그것도 위협이다. 코드를 뽑으면 순식간에 죽으니까 그런 횡포를 부릴 수는 없다. 약한 것을 괴롭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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